[하이퍼서사] Photo-text montage 그날의 조건

(돌아가기)


21.12.22(목)


 오늘은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스마트폰 중독 진단 학부모 교육을 저녁 7시에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무리해야 할 정리 업무들로 바쁜 와중에도 여러가지 심리검사 자료를 준비해갔다. 

 하지만 학부모님들은 피곤하신 때문인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예상보다도 훨씬 심했다.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선별한 유머에도, 오늘의 주제인 아이들에 대한 솔직한 평가가 필요할 때도 숨막히는 적막이 흘렀다. 7시 쯤엔 절반 이상이 나가고, 나머지 네 분 정도는 나누어드린 책자만 보고 계셨다. 

민망함에 죽을 것 같아도, 맡겨진 시간을 보람 있게 채우고 이끌어 나가는 게 내 일이다. 두 시간 반동안 진땀만 흘리다가 9시 54분쯤, '긴 시간동안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라는 인사를 마치고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한 번 이런 불통을 경험하고 나면, 우주에 나 혼자 유기되어 있는 것만 같다. 


고등학교 때 젊은 수학선생님의 씁쓸한 말과 표정이 떠올랐다. 

  너희를 대하는 건 절벽에 대고 소리치는 것 같아. 메아리만이라도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너흰 늘 묵묵부답이지? 

 이제보니 그 분이 이렇게 시적으로 에둘러 표현하신 이유는 다 있었다. 돌파구를 찾을 수 없던 자신의 한계에 대한 반응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출난 학생들이 모여있는 게 아닌 이상, 교실이라는 시공간은 소통이 이루어지기에 너무 짧고, 피상적이다. (완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애매한 사람과의 결혼은, 내 생각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말이 아니라 모호한 말을 쓰기로 타협한 것과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정말 강사의 탓, 교실이라는 공간의 탓일까? 스스로가 받아야 할 인사를 청자에게 돌리는 건, 이 직종에 있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나와 같은 무명 강사들이 지켜야 할 불문율일 것이다. 

평소엔 청자 중심적으로 그들을 배려하고,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었지만, 오늘은 이 모든 이해가 정말 지긋지긋했다. 


인생 살기 참 어렵다.

오늘도 잘 참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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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 우주로 사라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스토리텔러: 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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