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서사] Photo-text montage 마루
마루는 고양이이기 때문에 백과사전에 나오는, 고양이가 갖는 속성들을 모두 다 갖고 있다. 예컨대, 마루는 포유동물이다. 하지만 마루만의 특별하고도 객관적인 속성, 예컨대 족보나 속마음, DNA 등 개체로서의 속성을 발견하는 건 마루가 눈앞에 존재하더라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객관적일 수는 없어도 내가 기억하는 마루의 특별한 속성은 쉽게 파악이 가능하다.
마루는 5년 전 같이 살던 남동생이 집앞 국도에서 주워온 길고양이였다. 처음 봤을 땐, 꼬리가 잘린 채로 어미에게 버림받아 있던 손 크기만한 고양이었다. 하지만 우리와 함께 있을수록 마루가 사람을 좋아하고, 참을성 있고 온순한 고양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마루는 6개월 동안 잘 커가다가, 발정기가 되자 처음으로 집을 나갔다. 마루는 곧 임신한 상태로 집에 돌아와 다섯 마리의 새끼들을 낳았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안전하게 새끼들을 낳은 다음, 가르쳐주지 않았을 텐데 다섯 개의 탯줄을 이빨로 꼼꼼히 끊어냈다. 그리고 누구도 버리지 않고 전부 잘 보살폈다. 갓 낳은 새끼들을 만져도 예민해하지 않고, 우리를 믿어주었다. 내 기억속의 마루는 그런 온순하고, 또 충성스러운 고양이였다.
두 번째 발정기가 찾아왔을 때, 마루는 결국 자기를 부르던 수컷의 목소리를 따라갔다. 곧 두 번째 임신한 상태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날 이후, 안타깝지만 마루를 새끼들과 함께 풀어주었다.
그로부터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요즘, 내가 기억하는 마루의 회색, 갈색 줄무늬와 수컷의 시커먼 털과 눈동자를 가진 고양이가 우리 집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다. 그 고양이는 내가 다가가도 경계하지 않고 먼저 다가와 다리 사이를 지나간다. 마루가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이 아이가 마루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고양이에게도 기억이 유전된다면, 우리를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건, 지극히 사실과 무관한 추측일 뿐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마루와 연관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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